시민의 글숲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보호자의 존재

창녕 아동의 4층 빌라 탈출 사건, 계모가 트렁크에 7시간 동안 아동을 가둬 놓고 외출해 아동이 사망한 사건은 TV 속 이야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 이야기이다. 이러한 보도에 수많은 사람들은 학대를 가한 부모에 대해 분노하고, 학대를 당한 아동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댓글로 나열한다. 물론 더 잔혹하고 더 엽기적인 사건들이 많은 요즘 사회이지만, 더 많은 분노와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건 이 사건들의 범죄 구성 요건의 중심에 바로 누구나 언제나 마주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 아동의 보호 의무의 이행에 대한 사건 결과의 책임은 별개로 두고,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관계의 사전적 정의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이 현상과 관련 맺어짐을 의미한다. 관련성을 갖는 대다수의 모든 관계는 목적과 방향성을 갖는 수평적이거나 수직적인 관계 구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수직적 관계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할지, 서양의 개인주의를 근거로 수평적인 관계로 살펴보아야 할지는 각 가족의 개별적 상황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이냐를 관계에서 일괄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 등이 많아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아빠 없는 가정을 만들어 주지 않으려고’ 또는 ‘엄마 없는 아이로 키우기 싫어서’라는 이야기를 접할 때면 아직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역할자의 부재라는 측면보다는 수직적 관계에서의 역할자의 자리 지킴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인 것 같다.

 

수직적 관계 안에서의 가족은 보호하는 자와 보호 받는 자의 위치가 고정된다. 이에 보호의 명분 안에서 보호하는 자의 어떠한 가학도 발생할 수 있고, 보호를 받는 자는 학대마저도 보호의 방법으로 수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학대의 정도가 수용 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바로 가족의 문제가 사회의 범죄로 이어지는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이럴 때 매번 드는 의문은 보호하는 자는 학대를 가해서라도 훈육하였다고 말하고 또 보호 받는 자는 학대를 받아가면서도 보호자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모든 사회 문제나 범죄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기본권을 갖는다. 미성년자도 국민의 일원으로 사회가 특별히 더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다. 법과 제도 안에서 보호받는 방법은 문제 발생 전보다 발생 후에 이뤄지기 쉽다. 발생 후의 회복 방법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문제가 사회의 문제로 부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인식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이 아닐까 한다.

 

미성년자의 보호자는 미성년의 자녀가 성년이 되기 전까지 특별한 보호 의무와 책임 의무를 갖는 자이다. 자녀는 양육의 대상자이지만, 결코 자녀를 내 소유의 종속물로 생각해서는 위험한 것이다. 코로나19를 경험하고 있는 요즘, 가정에서의 학습과 생활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떤 모습의 보호자로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돌아본다. 혹시 성인으로 나아가는 준비의 시간을 갖고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선보다 나의 소유물이나 종속물에 가깝게 바라보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본다. 한 마리 새가 둥지를 떠나 날아오르기 전까지 우리는 보호자에 가깝나? 소유자에 가깝나?

 

박아현 (시민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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