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우리는 어떤 영웅을 바라는가

정세랑/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장금민(시민참여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웅의 이야기는 언제나 큰 인기를 끌어왔다. 숭배의 대상에서부터 오락의 주인공까지 영웅 서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약간의 변화가 있을지언정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영웅은 비범한 능력(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을 이용해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고 위업을 달성한다.

사립 M고의 보건교사로 재직 중인 안은영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젤리”(사람의 감정에 반응하여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일종의 엑토플라즘과 같은 영적인 에너지체)를 정화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이인(異人)으로 『보건교사 안은영』은 언뜻 이러한 일련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다.

그러나 본 소설의 주인공은 전통적인 영웅상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니다. 비비탄 총과 무지개 칼을 매일 가지고 다닌다는 점을 제외하면 안은영은 만성피로와 근육통에 시달리며 퇴사를 입에 달고 사는 전형적인 현대 직장인상에 가깝다. 게다가 ‘젤리’를 다루는 힘은 대기업의 사업 수단으로 거래될 정도로 암암리에 활성화되어 있으므로 그 능력 역시 은영만이 지닌 유일한 것은 아니다.

안은영을 영웅이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우선, 매켄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견 순진하고 열정적인 원어민 교사처럼 보이는 그는 ‘젤리’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취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타인의 입장이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까닭에, 보건교사이자 퇴마사로서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은영과의 갈등은 거의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립은 두 사람이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공통분모에 기반하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달아 갔던 어린 은영이 30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포기와 체념을 속으로 삭이고 넘겨왔을지 그 궤적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한국에서나 저 먼 미국에서나 귀신을 본다며 손가락질받는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다수와 다르다는 점은 어쩌면 특별한 계기 없이도 폭력 앞에 노출될 수 있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이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의 동양인 꼬맹이의 삶이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힘 빼지 말라는 그의 발언은 도발보다는 오히려 굶어 죽기 직전의 동족에게 고하는 충고에 가깝게 들린다. 나만 중요한 매켄지가 유별나게 나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은영도 유별나게 착한 사람은 아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은영은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를 진심으로 싫어한다. 하지만 능력자의 ‘친절’을 의무가 아닌 가치관 차이에 따른 선택으로 여기고 있기에 ‘친절’을 요구하지 않는다. 착한 짓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내 영역인 학교에서 꼼수를 부리면 용납하지 않는다는 영역 싸움 비슷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손익을 계산해서 행동하는 매캔지에 비해 은영의 동기는 훨씬 단순하다. 그냥 한다. 그것은 마치 놀이터에 널려있는 유리 조각을 발견하면 욕을 짓씹으면서도 그것을 정리하는 정도의 감각 정도로 느껴진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시간조차 없이 행위는 이루어지므로 지하실 허공에 팔을 휘적대는 은영은 누가 봐도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솥이 검다고 밥도 검을 쏘냐. 실수도 후회도 많이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안은영은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새로운 영웅의 모습이 아닐까. 대중을 이끄는 선각자나 구원자 따위가 아니라 그냥 내가 아팠으니까 다른 사람은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어쩌면 영웅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자 변치 않는 조건이 아닐까. 망가진 세상에서 귀한 마음을 가진 탓에 아픈 사람들에게 한 줌 햇빛 같은 따스함이 깃들기 바라며 오늘도 네 이웃과 주위 생명들에게 친절하기를 자신에게 고할 따름이다.

 

장금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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