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원룸을 전전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젊은이들

<이혜미, 착취도시, 서울(글항아리)>

주유현(시민참여자)

내가 처음 자취를 시작한 곳은 약 5평의 건물,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의 방이었다. 부모님의 품에서 빠져나와 혼자 살게 된다는 설렘에 두근거렸던 것도 잠시 학교와 가깝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 6평의 공간을 보고 마음이 갑갑해졌다. 5층짜리 건물의 4층. 그나마 햇볕이 들어와서 여자가 살기에는 좋다고 부동산 아저씨는 말했지만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건물은 흐린 날이면 하수구 냄새가 열어둔 창문을 넘어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이게 나만이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20대의 평균에서도 좋은 축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아도 대학을 다닐 수 있고 보증금 500만원과 월세를 내 줄 부모님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이 책에 공감하며 읽게 된 것은 쪽방촌과 착취 도시라는 단어가 내 스무 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책을 열어봤을 때는 글쓴이가 기자라는 것도 쪽방촌의 빈곤 비즈니스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착취도시, 서울>의 지은이인 이혜미 기자의 2019년 5월 7일 한국일보의 기사는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가난이 누군가에게는 꼬박꼬박 월세가 나오는 돈벌이며 투기처가 되고 있다는 헤드라인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분노와 함께 허탈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가진 게 없어서 주거 용도가 아닌 근린 생활 시설의 건물 5평의 원룸에 살고 쪽방촌에 살고 있는데, 이런 내 삶이 가진 사람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이라니 믿기 어려웠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내가 처음 자취를 시작했던 곳 역시 5층 건물의 20개로 방을 쪼갠 곳이었다. 방 하나에 30만원씩 월세를 받는다고 치면 600만원이 매달 고스란히 건물 주인의 주머니로 들어가는데 이것을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표현할까.

이런 문제는 비단 쪽방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한양대의 기숙사 증축에 반대하는 원룸촌 사장들의 이기심이 뉴스에 연일 보도되었다. 이유는 한양대 기숙사가 들어서면 자신들의 건물에 들어올 학생들이 없어서 벌이가 사라진다는 이유였다.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쪼개고 쪼갠 5평 남짓한 방에서 스무 살의 학생들은 버티고 있었다. 그나마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서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방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 버틴다는 것이다.

<착취도시, 서울>을 읽으면서 원룸이 아파트나 타워 팰리스보다 평당 가격이 비싸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더 넓고 좋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5평 남짓한 곳에서 사는 사람이 어째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열심히 살지 않아 영원히 그런 집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룸에 사는 학생들이 그들의 생각처럼 모두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서울이나 부산 혹은 광주와 같은 광역시의 큰 도시에서 일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5평 남짓한 공간에서 버티는 것이다.

필사적으로 버티는 이들에게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손가락질을 보내는 게 옳은 일일까?

가진 게 없어서 원룸과 쪽방촌으로 내몰린 이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바꾸는 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집이란 버티는 곳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니까.

 

주유현

내집마련을 꿈꾸는 흔한 자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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