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권하는 도시
염주사거리에 약속이 있던 나는 서구 동천동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갔다. 한 번에 가는 차가 없어 광천 터미널에 가서 환승을 해야 한다. 그래서 터미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전광판 알림에 의하면 10분 남았다. 지금 현재 시간은 오후 6시 반, 퇴근길 차 막힘이 극심한 시간, 버스는 제 시간에 올 생각을 않는다. 이윽고 만원버스에 옹기종기 콩나물처럼 끼어 타면 터미널까지 도착하는 데 빠르면 10분 늦으면 15분 쯤 걸린다. 겨우겨우 환승카드를 찍고 내렸더니 환승해야할 버스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
다시 버스를 15분 기다려서 만원버스에 콩나물처럼 끼어 타고 20분 걸려 긴 여정을 마무리 하게 됐다. 서구에서 서구를 이동하는데 걷는 시간 포함 한 시간이 걸렸다. 순전히 걸어서 가도 한 시간 반 밖에 안 걸리는 곳을 버스를 두 번이나 타고 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아, 차가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개개인의 불편함을 나열하자면 책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정책은 지속적으로 대중교통을 장려하지만 애써 만든 지하철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을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남대학교를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면 결국은 내려서 환승을 해야 한다. 버스 또한 노선이 적어 환승을 꼭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의 원인은 비단 노선 문제만은 아니다. 자가용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차가 막히게 되고, 버스는 그 차들 틈에 껴서 옴짝달싹하게 된다. 그러면 기다리는 시간은 늘어나고 같은 거리라도 이동시간은 길어진다. 그러면 당연히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차를 구매할까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속이 지금의 광주광역시를 만들었다.
그렇게 차가 많아져버린 광주는 지금 자동차 과포화 상태이다. 거리엔 갓길주차가 비일비재하고 골목 구석구석에도 차가 수두룩하다. 이는 골목길 교통사고로도 이어질 위험이 매우 높다. 내가 사는 동네로 예를 들면 상가와 아파트단지 사이의 왕복2차로에 갓길주차가 많아 횡단하는 사람들이 위협을 받는데, 광주광역시는 갓길주차를 막을 수 없으니 사람을 막았다.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난간을 설치해 자유로운 횡단을 막고 도로 중간 중간에 횡단보도를 만들었다. 이런 방식은 과연 누구를 위한 장치일까? 사람을 보호하는 것일까? 아니면 차를 보호하는 것일까?
인도, 자전거도로, 횡단보도 모두 사람을 기준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동차의 편의에 기준을 두고 만들었다. 도시가 사람들에게 차를 사라고 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흔히들 ‘서울은 차 없어도 광주는 차 없으면 못 산다’는 말을 심심찮게 한다. 요새는 한 가정에 차가 두 대 있는 집이 대부분이며 세 대 있는 집도 드물지 않다. 심한 경우에는 인원수대로 차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한 명이 두 대 이상의 차를 보유한 경우도 더러 있다. 차가 없으면 생활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자동차 수는 점점 더 악순환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으로부터 구제해줄 거라 믿고 산 자동차가 결국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가속화시키고 그로인해 또 차는 늘어만 간다. 장마철 강물 불 듯 늘어난 자동차를 위한 도로와 시스템 개편 때문에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은 줄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아니꼬우면 차를 사든가’식의 분위기는 우리가 ‘차를 권하는 도시’로부터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 내 고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도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은 시민-류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