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글숲

양림동의 가을 

 

가을이 깊어지면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마련이다. 지난 2년 여간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의 기세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면서 여행수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해외여행을 가기에는 여전히 이런저런 부담이 적지 않다. 이럴 때 기분전환 겸 군산이나 목포 또는 여수나 전주 같은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을 다녀오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그도 아니라면 차라리 광주를 여행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광주는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도시 구석구석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적지 않다. 특히 단풍이 자신의 색을 찾아갈 때쯤에는 남구의 양림동에 가는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 낙후된 동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의 몇 안 되는 장소, 골목이 살아있는 곳. 모두 양림동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아마도 양림동의 매력 중 하나는 독특한 풍경일 것이다. 좁은 골목과 낮은 담이 이어져 있는 양림동은 아파트 건설 붐이 한창인 광주의 다른 곳에 비하면 걷는 내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사직공원을 올라가면 잘 가꾼 숲이 있어서 맑은 공기와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양림의 장점이다. 또 높은 곳에 올라가면 광주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양림동은 일제강점기 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와 터를 잡은 곳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활동했던 터전이어서 광주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어느 한적한 골목길을 돌아 들어갈 때면 100년 전 누군가도 이 골목을 서성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꺾어진 골목에서 그 시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튀어나올 것만 같다. 때론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가 밀정에 쫓겨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장면도 떠올려 본다. 눈이 내리는 어느 쓸쓸한 겨울 밤 가로등 밑에서 아직 들어오지 않는 식구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양림동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이러한 상상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양림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길은 어느새 어릴 적 잠깐 살았던 기억 속 외할머니의 집으로 이어지고 다시 또 과거의 어떤 기억으로 달음박질 해간다. 친구들과 함께 모여 놀던 그 골목길, 도시와는 다른 따듯한 흙빛 돌담이 코밑이 하얀 애들을 보듬어 안아주던 모습이 잠깐 동안 기억을 스쳐간다.  

그런 점에서 양림동의 진짜 모습은 호랑가시나무 부근에 있는 선교사 사택들에서 시작해 호남신학대학 선교사 묘역까지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지금이야 이곳이 유명해져 카페와 음식점들이 대거 들어서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양림동이 이처럼 재조명 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이 머물다 간 흔적 때문일 것이다.

늘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는 번잡한 동네가 되었지만 양림동의 속살은 광주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양림에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소박한 것과 화려한 것, 우리의 것과 외래의 것이 공존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그 널브러진 조각들을 누비고 잇는  경험은 양림동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다.

 

  광주의 숨은 이야기와 장소를 찾아다니는 30대 워킹맘 – 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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