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여자, 진짜로 라이벌이 필요해

<권김현영, 여자들의 사회(휴머니스트)>

배소영(시민참여자)

대중문화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함과 동시에 수용자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제작자들은 누구보다 빨리 대중들이 바라는 것을 포착하고 작품에 접목하려 한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로맨스 장르의 하위 범주인 ‘로맨스 판타지’ 장르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2010년대 이후 기존 로맨스 장르에서 통용되었던 서사 장치들이 여성 독자들의 공감과 몰입을 불러오기 어려워진 사회 문화적 맥락을 제시한다. 어떤 자본을 가지고 태어났는 지에 따라 자라온 환경과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제 재벌가의 남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여주인공 앞에 꽃길이 펼쳐질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에 소위 ‘로판’ 주인공의 이야기는 전이, 환생, 회귀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로판’ 역시 기존 장르의 문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주인공과 적대하는 반동 인물의 성별이 여자일 경우(모든 맞수가 반동인물인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그들이 가진 사연과 상관없이 무조건 ‘나쁜 년’이 되며 이에 대한 비난 자체가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을 정도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서태웅처럼 혹은 <배트맨>의 배트맨과 조커처럼 소년 만화의 ‘남자’ 라이벌이 ‘또 다른 주인공’이나 ‘진짜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에 비교하면 이 ‘나쁜 년’들의 역할은 그저 방해물이자 욕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소위 ‘소년 만화’와 달리 두 주인공의 사랑이 필수 불가결한 로맨스 장르의 특징상 ‘사랑을 방해하는 악녀’라는 클리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익숙한 장치는 안정된 재미를 보증하니까.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은 피로감을 불러일으키고 왜곡된 편견을 고착화할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맹목적으로 호의적이라면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요소들이 현저히 적어질 것이고 갈등이 없으니 사건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줄 방도가 없기에 인물 간의 이야기는 종이 한 장보다 더 납작해져, 결론적으로 굉장히 재미없는 작품이 되고 말 것이다. 즉 숙명의 라이벌은 단순히 작품 내 성애의 유무가 아니라 서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난 “자매애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말에 <유리가면>에 등장하는 마야와 아유미의 관계가 떠올랐다. <유리가면>은 3대에 걸쳐 보는 만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가진 순정만화로 그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주인공인 마야와 라이벌인 아유미가 전설의 연극 ‘홍천녀’의 주연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야기다. 마야는 어머니와 둘이 살며 어머니가 고용된 식당 위층에 얹혀사는 가난한 여자애로 뒤늦게 연극에 뛰어들어 오로지 그 재능 하나만으로, 홍천녀를 연기했던 전설의 배우인 츠치카게 치구사의 눈에 띄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다. 반면 아유미는 유명한 배우인 어머니와 감독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화려한 배경과 외모로 아역 배우 시절을 거쳐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다. 그러나 그녀는 사실 피나는 노력이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의 수재로, 아유미는 마야와 경쟁하며 단순히 역할에 몰입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인물 그 자체가 되는 마야의 순수한 재능에 좌절한다. 그러나 마야 역시 자신에게 없는 표현력과 기술을 지닌 아유미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둘의 갈등은 무너져 내린 절벽에서 네 손을 놓을까 망설였다는 아유미의 고백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머리채를 잡고 진흙탕을 구르며 진심을 토해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독자로서는 주역의 영광을 차지하는 것이 최후의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두 명 모두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싸우다가 정든다는 옛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반목하다가도 오롯이 서로를 인정하고 연대할 수 있는 인물들이 서사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그래야만 독자는 자기 경험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 그제야 텍스트는 단순히 글 몇 줄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읽고 작품이 지금은 고구마 100개라도 삼킨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재미없다’, ‘답답해서 하차한다.’라는 댓글을 다는 대신에 잠깐 쉬어라, 그리고 다시 읽어라. 아마 그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배소영

영화와 소설과 음악을 사랑하며 삶을 위로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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