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애도의 여로

<호프 에덜먼, 슬픔 이후의 슬픔(다산초당)>

이연숙

재난이나 사고, 갑작스러운 질병처럼 예상치 못한 이별이든 어느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다가온 죽음이든 인간의 생애는 유한하기에 우리 삶에는 언제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한다. 남겨진 이들은 “그래도 산 사람을 살아야지.”라는 명령에 따라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고 주변을 정리하며 무너진 일상을 다시 ‘정상 궤도’로 올려놓는 작업에 열중한다. 하지만 떠난 이의 소지품과 옷을 태운다고 해도 슬픔은 그처럼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더는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상실에 대한 공포와 괴로움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정상’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에 휩싸인다. 그래서 그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상에서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기도 한다.

책의 저자 호프 에덜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프 에덜먼은 10대에 어머니를, 20대에 아버지를 잃었다. 남겨진 동생들을 추스르고 무사히 장례식을 마친 후, 대견하다는 주변의 목소리에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저자는 “오히려 너무 완벽히 건넨 작별 인사 탓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소중한 이의 죽음과 이로 인한 슬픔은 정상적인 일상을 영유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대상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죽음을 ‘극복’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애도’ 역시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굴복시켜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만약 우리를 구성하는 신체 기관의 일부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 공백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금 익혀야만 한다.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과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마음과 감정 역시 인간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나를 이루던 이’를 떠나보낸 사람에게 아직도 잊지 못 했냐고 묻는 것은 너무 잔인한 말이다. 애도는 단순히 고인의 흔적을 지워내는 고독하고 쓸쓸한 것이 아니라, 슬픔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원하는 만큼 말하면 그 이야기들을 들어 줄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기나긴 여로가 아닐까.

이연숙

건강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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