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없는 사회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
“무운을 빌게.”
면접을 앞둔 친한 동생에게 격려의 말과 함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를 묻는 답이었다. 당황했다. 아주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쓴 말인데 모르다니! 그날 나의 일화는 최근에 한 이슈를 떠오르게 했다.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
이 통상적인 공지 문구에 “심심해서 사과한다는 거야?”,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등의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항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심심(甚深)하다’는 표현을 일부 사람들이 ‘지루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해 항의 댓글을 단 것이다. 이는 소위 말하는 ‘요즘 애들’인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OECD 조사 결과까지 거론하며 ‘실질 문맹인’이라는 표현으로 디지털 세대의 낮은 문해력을 문제 삼았다. 이 같은 논란이 올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에는 ‘명징’과 ‘직조’, 2020년에는 ‘사흘’, 2021년에는 ‘금일’과 ‘무운’이라는 단어에서 비롯된 논란이 이어져 ‘심심한’이라는 현재에 이른 것이다. 몇 차례 한자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세대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고 느낀 사람들은 곧바로 응수했다.
“요즘 애들 큰일이다!”
정말 큰일일까? 사실 SNS의 등장으로 문해력을 염려하는 연구는 많으나, 우리나라 청년 문해력이 정말로 문제인지를 조사한 결과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또한 2018년에 실시된 국제성인역량조사에 따르면 16세 이상 65세 이하 한국의 성인 문해력은 OECD 국가들의 평균 정도에 해당하며, ‘요즘 애들’인 16~24세 청년의 문해력은 최상위권에 속한다. 생각해보면 장년층보다 고등교육률이 높은 요즘 애들이 문해력이 낮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물론 통계자료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문해력 점수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자료는 매년 불거지는 문해력 논란이 단순히 특정 세대의 문해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느 세대이건 낯설게 여겨지는 어휘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한자어, 신조어처럼 세대 간 어휘력 차이일 뿐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논란 이후 반응에 있다.
“왜 그런 어려운 단어를 써서 헷갈리게 해요?”
문해력 논란에 일부는 이렇게 반응했다. 이 논쟁의 맹점은 낯선 말을 접했을 때 적대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타인과의 대화에서 누구나 한 번쯤 모르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말을 한 것이 잘못’이라는 식의 태도로는 대화가 이어질 수 없다. 이는 아직도 한자어를 사용하고 강요하는 것이 ‘꼰대’라고 말하는 것과 무식한 ‘요즘 애’들이라 말하는 것 모두 해당한다.
소통은 이해가 필요하다. ‘심심한’이라는 말이 기계적인 사과일지는 몰라도 ‘지루한 사과’는 아닐 것이라고 이해하고 무슨 뜻인지 찾아보는 노력이 선행 되었더라면, 한자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해가 있었더라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이렇게 이분법적 사고와 태도로 이해보다는 적대와 조롱으로 맞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사고와 태도는 소통이 아닌 공격일 뿐이며, 실질적인 논쟁의 해결보다는 또 다른 논쟁을 만들 뿐이다. 우리가 ‘심심한’ 논쟁을 통해서 깨우쳐야 할 점은 요즘 애들의 문해력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서로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요즘 사회 문제로 떠오른 ‘문해력’을 개선하여 높이는 출발점이 아닐까!
더 설명할 필요 없는, 그냥 – 문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