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책

우리가 하는 일이 보이지 않나요?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휴머니스트)>

정다은(시민참여자)

서점의 진열대에서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를 처음 봤을 때는 촌스러운 형광 녹색의 표지와 형광 분홍색의 띠지, 그리고 어쩐지 시비를 거는 것 같은 제목 때문에 웃고 말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중·노년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를 마주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라는 시비조의 제목은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을 애써 외면하며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를 향한 외침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중·노년의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지만 그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식당 주방의 뜨거운 불과 숨 막히는 습기 앞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도 여성, 그 음식을 몇 번이나 나르는 것도 여성, 식사를 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뒷자리를 청소하는 것도 여성인데 너무 당연한 일로 여겼다. 식당뿐만이 아니다. 사무실이나 도서관·지하철 등의 청소를 담당하는 이도 대개 여성이고, 당연하다는 듯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이도 여성이다.

이처럼 실제 우리 사회에서 청소나 가사 등의 필수 노동은 6070 여성들이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주부”의 이름에 가려져 직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중·노년 여성들에게 “당신의 노동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라고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가사 노동과 요양사 일을 겸하면서도 그게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춘자씨(인터뷰이)에게 기자가 몇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며 감탄하자 “내가 직업이 많은 줄은 몰랐는데. 어른하고 말하면 그래야제. 나 월급쟁이여라” 하고 스스로 감탄하면서 자신의 노동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과연 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하나같이 “안 대단하면 어떡해”라면서 버틸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 대해 말하며 책을 읽는 나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응원을 던져주었다.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말할 만큼 여성의 교육에 대해 무지했던 시기를 살아왔다. 지금이 중·노년 여성들이 겪은 시절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결혼하고 임신하면 퇴사 눈치에 고민할 만큼 여성의 직업 안정도가 낮고 지속적이지 못하다.

내가 인터뷰에 응한 중·노년 여성들의 나이가 될 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되어있을까.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책을 덮었을 때 비로소 나는 왜 이 책의 표지가 형광색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얼핏 촌스러워 보이는 이 형광색은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여겨졌던 중·노년 여성들의, 자신들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고 직업이 있음을 알리며 이제는 그림자에서 벗어나겠다는 외침이었다.

정다은

워킹맘.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해내고야 말겠다고 매일 의지를 다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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