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포럼

독서모임의 경험

강의준 (노벨문학상수상작읽기모임)

인문학 운동의 현주소 – 시민 인문학

저의 ‘최초의’ 인문학 활동의 경험은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운동권의 세미나가 그것입니다. 저는 80년대 학생운동의 경험이 현재의 인문학 운동의 전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의 상황과의 비교가 유용할 수도 있겠지요. 당시와 지금의 가장 큰 공통점은 당연히 계몽이라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의식화’라고 말했습니다만, 결국 의식화란 계몽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정치의식화가 사회과학 서클들의 목표였습니다. 물론 학습-선전-조직으로 이어지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 이런 독서모임 혹은 세미나는 학생운동 조직의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동질적인 모임 성원들, 위계적인 선후배 체계 하에서 이루어지는 반강제적인 학습 등의 요소가 세미나의 확산에 기여했을 것입니다. 조야한 학습의 내용은 정치적 목표의 시급함과 선명함으로 변명되었고 심지어는 보다 깊은 공부로 심화되는 것을 ‘이론주의’라는 이름으로 경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운동권의 사회과학 독서모임들은 현재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인문학 운동 혹은 계몽 운동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인문학 운동은 대학이라는 장소와 결정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공장의 노동조합 교실이나 시민운동 사무실, 그리고 교회도 그런 영역에 속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예외적이라고 말해야 하겠죠.

저는 이런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인문학 운동에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혹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인문학 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다수가 학생운동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동시다발적인 다수의 독서 모임이 생겨난 원초적인 경험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물론 현재의 인문학 운동이 학생운동의 재탕이나 연장이라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현재의 인문학 운동은 전혀 다른 상황과 조건들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지향하는 바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인문학 운동의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따른 학생운동의 쇠퇴, 아카데미즘의 장소로서의 대학의 권위 약화, 대학 교육의 직업교육화,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 담론에 이르기까지. 이런 이야기들은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대학이 변화했다는 것, 여기서는 결정적으로 더 이상 인문학의 독점적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시민 인문학’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건 간에, 그 이름이 말해주는 것 중에 하나는 ‘학생 인문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몽의 중심이 대학이나 학생들로부터, 그 전형성의 장소들의 밖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바로 이 워크샵의 주제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시민 인문학’은 이런 변화된 상황이 강제하는 현단계 인문학의 주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런 변화의 구체적인 지점들을 전부 살펴 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거칠게 이렇게 질문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인문학 운동의 조건들은 더 나아졌는가 하고 말입니다.

인문학의 르네상스라고 말합니다. 예전의 어두운 자취방에 갇혀 있던 인문학은 이제 백주를 활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백화점, 주민커뮤니티센터, 도서관과 시민대학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강좌들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티비에서도 유명 강사들이 강연을 하고 인문학과 예능을 결합한 프로그램이 방영됩니다. 또한 트레바리라는 유료 독서모임 서비스가 이미 회원이 5천을 훨씬 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 운동이 계몽의 프로젝트 – 계몽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기서 다룰 수는 없습니다 – 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재의 인문학이 이전의 ‘의식화’ 운동의 단계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목표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치적인 의식화라는 보다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목표에서 훨씬 더 포괄적이고 모호한 문화적인 실천으로 – 그 내용 또한 민주주의, 인권, 환경 등으로 훨씬 더 다양해졌습니다 – 변화되었다는 사실도 현단계 인문학의 실천을 어렵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달라진 조건들, 그 중에서도 매체 환경 – 인터넷, 핸드폰, 디지털 미디어 – 이라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건의 변화도 인문학에 우호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물론 새로운 디지털 인문학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문학이라는 실천이 마지막에는 책이라는 매체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인정한다면 결국에는 인문학의 미래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위에서 이야기한 대학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인문학 운동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조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다양한 목표를 ‘시민들’이라는 개별적이고 느슨하고 모호한 주체들에게 떠맡기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문학 강좌라는 형식

인문학 활동과 관련해서 가장 전형적이고 대중적인 형식은 아무래도 인문학 강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외에 독서 모임, 세미나, 토론회 등의 형식도 있고 영화나 음악 미술 등의 다양한 장르를 활용하는 방식들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들이 대부분 학교 교육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것은 인문학이 오랫동안 계몽과 교육의 장에서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 강좌가 유행하는 것은 그것이 이러한 계몽의 전형적인 모델이라는 점에도 있겠지만 또한 주체의 입장, 혹은 주최측의 입장에서 대중을 동원하기에 가장 쉽고 유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독서모임은 참여자들에게 독서라는 부담을 지우는 일이고, 모임을 지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2011년부터 노대동에서 지역운동을 하는 분들과 연대해서 ‘송화인문학당’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약 40여 회의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는데, 구성의 원칙이라는 게 있었다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강사들 또한 광주 지역에서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여기에도 한 번쯤은 강사로 오셨던 분들이 계십니다.

이 활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강좌의 참여 인원이 20명이 넘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참여자의 숫자가 성공과 실패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을 테고, 나름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고 자평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제가 이 활동을 돌아보면서 가졌던 고민 중의 하나는 평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혹은 성공한 인문학 강좌는 어떤 것일까요? 물론 어떤 기준 혹은 관점을 채택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인문학 강좌를 대중 동원을 위한 하나의 행사라고 본다면, 당연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가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인문학 강좌들이 관의 지원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런 경우에 수량화할 수 있는 것들이 행정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관심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훨씬 더 어려운 본질적인 질문들이 있습니다. 인문학이 최종심에서는 인간의 변화, 의식의 변화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평가의 문제는 대답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학교 교육과 비교해 보자면, 학교는 제도적인 평가의 틀을 갖고 있지만 인문학 교실에는 그런 방식을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그 강좌가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었다면, 그 강좌를 통해서 참여자들의 민주적 의식이 얼마나 고양되었는가 하고 질문할 수 있고, 여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면, 가부장적인 의식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하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대답하기 어렵고 수량화하기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때로는 양적인 평가와 질적인 평가가 상충되기도 합니다. 유명한 인문학 강사를 모시고 지역의 알만한 인사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인문학적 활동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제 경우에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던 것은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강좌를 계속할 의미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대중적인 반향을 얻지도 못했고, 지역 운동을 계속 이어갈 주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지도 못했고, 다른 다양한 모임과 실천으로 – 예를 들어 학부모회, 취미 모임, 독서회 등 – 연결되지도 않았습니다. 특히나 주체 형성이라는 질문, 즉 이런 활동을 통해서 지역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의식이 높아졌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매월 반복되는 일회적인 행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인문학 강좌라는 형식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인문학 강좌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을 – 스타 강사에 대한 것이나 참여자가 아니라 관객을 양산한다는 –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저의 반성은 그 형식이 쓸모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강좌라는 행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살과 피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주체들의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모임 내지는 활동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매주 모이는 독서 모임에서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달의 마지막 모임에서는 책의 저자나 관련이 있는 전문가를 모시고 강좌나 토론회를 개최하는 진일보한 형식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여가 없는 계몽에는 한계가 있다고나 할까요.

독서 모임의 경험

결국 가장 고전적이고 단순한 인문학 활동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는 것입니다. 여기서 읽기의 노동에 관해서나 함께 모여서 책을 읽는 방식의 장점에 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저 자신의 독서 모임의 경험에 대해서만 간단히 말해 보겠습니다.

현재 제가 참여하고 있는 몇 개의 독서모임들이 있습니다. 갈매나무 소설읽기, 갈매나무 인문학, 노대동 강독모임, YMCA 독서모임, 평화학 공부모임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합수 낭독모임, 송화독서모임, 송화인문학당 등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2010년 광주에 돌아온 이후 2011년 3월 카페 ‘갈매나무’에서 세 사람이 모여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를 읽은 것이 저의 광주에서의 첫 독서모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는 것은 그 전에 몇 차례인가의 시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한두 차례의 모임으로 끝난 그 모임들의 실패 원인은 물론 가장 단순한 것입니다. 읽어 오기로 한 책을 읽어 온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아마 모든 독서모임들의 실패 원인 중 가장 압도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후 이 고질적인 문제, 사전 독서 없이는 독서 모임을 지속할 수 없다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낭독 모임 혹은 강독 모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약 3년 정도 지속되었던 합수낭독모임은 책을 통째로 낭독하는 모임이었고, 지금도 진행중인 노대동 모임은 발췌 강독 모임입니다. 물론 이런 모임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쨌든 갈매나무에서의 독서모임은 참여한 성원들의 자발성에 힘입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작 이후 두 개의 격주 단위 모임으로, ‘소설읽기’와 ‘인문학모임’으로 분화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거쳐간 사람들은 약 20여 명에 이르지만 처음 시작했던 서너 명의 주축이 되는 멤버들은 꾸준히 계속하고 있습니다. 소설읽기 모임에서는 주로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습니다만 그 외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목록 참조) 2017년부터는 소설읽기 모임의 멤버를 중심으로 ‘100일 글쓰기’를 1년에 두 번씩 하고 있습니다. 이번 11월 중에 “500번의 로으인”이라는 책을 결과물로 갖게 될 예정입니다.

위에서는 계몽으로서의 인문학 운동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제가 독서 모임들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즐거움’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일은 일종의 노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쾌락이기도 합니다. 즐거움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습니다. 계몽의 요소가 다양하듯이 즐거움 또한 다양합니다. 독서 자체의 즐거움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 다른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공동체가 주는 즐거움 등 다양한 즐거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분이 모임에 오셨길래 무엇 때문에 왔냐고 물었더니,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렇죠. 그런 즐거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인문학은 계몽과 즐거움이라는 두 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질 수 있을 때 좋은 독서 모임들이, 그리고 인문학 운동이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매나무 인문학 모임의 책들

2011-2012

에이미 추아 제국의 미래, 우석훈 나와 너의 사회과학, 서동욱 철학연습 -서동욱의 현대철학 에세이,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켄 윌버 모든 것의 역사, 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진중권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 정태인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C. 치브리스 외 보이지 않는 고릴라, B.애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권택영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 죽은 신을 위하여, 에릭 홉스봄 폭력의 시대,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사카이 다카시 폭력의 철학-지배와 저항의 논리, 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에티엔 발리바르 폭력과 시민다움-반폭력의 정치를 위하여, 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 폭력에 대한 6가지 삐딱한 성찰, 마크 쿨란스키 비폭력,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한병철 피로사회, 김현대, 하종란, 차형석 협동조합 참 좋다, 스테파노 자마니 외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김기섭 깨어나라! 협동조합, 김성오 몬드라곤의 기적, 생명운동이론지, 『모심과 살림』, 『2012 노원협동조합학교 강의록』, 정태인 (새사연 정태인 원장과의 세미나)

2013-2014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이희한, (아이쿱생협 이희안님 초청강의), 그레그 맥레오드 지역을 살리는 협동조합 만들기 7단계, 김용한, 하재은 협동조합 시대-협동조합 설립과 운영 실무, 마이크 데이비스 슬럼, 지구를 뒤덮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엠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탈출에 관해, 엠마누엘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 엠마누엘 레비나스 신, 죽음, 그리고 시간, 우치다 타츠루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Ⅰ,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파울 첼란 죽음의 푸가-파울 첼란 시선

2015-2016

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와 베스트 셀러, 울리히 벡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에라스뮈스-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앨런 와이즈먼 인구쇼크-과잉 인구시대, 지구와 인류를 위한 최선의 선택,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중동의 탄생, W.J.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이미지의 삶과 사랑, 빌 리제베로 서양 건축 이야기, 캐롤 스트릭랜드 클릭, 서양 건축사, 안희경 문명, 그 길을 묻다,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수전 손택의 말-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사사키 아타루 야전과 영원-푸코, 라캉, 르장드르,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마틴 메러디스 아프리카의 운명-인류의 요람에 새겨진 상처와 오욕의 아프리카 현대사, 케네스 포메란츠, 스티브 토픽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교역으로 읽는 세계사 산책, 프랭크 터너 예일대 지성사 강의, 찰스 테일러 자아의 원천들-현대적 정체성의 형성, 우석훈 88만원 세대, 엄기호 단속사회, 후루이치 노리토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니콜라스 판 르 코르뷔지에, 언덕 위 수도원, 제임스 캐럴 예루살렘 광기-왜 예루살렘이 문제인가, 유진 로건 아랍-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정의길 이슬람 전사의 탄생-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 타밈 안사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댄 주래프스키 음식의 언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2017-

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경제, 공론장, 인민주권,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사회, 찰스 테일러 현대 종교의 다양성, 찰스 테일러 헤겔, 로널드 드워킨 신이 사라진 세상-인간과 종교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 테리 이글턴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테리 이글턴, 매슈 보몬트 비평가의 임무-테리 이글턴과의 대화, 마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로저 에커치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N. 엘리아스 문명화 과정 Ⅰ·Ⅱ,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Ⅰ·Ⅱ·Ⅲ,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Ⅰ·Ⅱ·Ⅲ·Ⅳ, 진중권 서양 미술사 1, 2, 3, 4, 승효상, 묵상: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예정)

갈매나무 소설읽기 모임의 책들

2012년 3월 30일 – 현재

김훈 화장,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스티븐 킹 미저리, 김원일 슬픈 시간의 기억,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범신 은교, 오정희 동경, 강희진 유령, 옴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미란 꽃의 연원, 다이 허우잉 사람아, 사람아, 에드거 앨런 포 더 레이븐/ 에드거 엘런 포의 그림자, 이화경 꾼, 이청준 서편제, 이청준 벌레이야기, 이청준 자유의 문, 이청준 가해자의 얼굴, 이청준 흰옷, 히가시노 게이꼬 용의자 X의 헌신, 가와비타 야스나리 설국, 오에 갠자부로 개인적인 체험, 마시마 유끼꼬 해피해피 브레드, 나쓰메 소세끼 마음,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아쿠타가와 류노스께 아쿠타가와 작품선, 아베 코보 타인의 얼굴, 무라카미 하루키 IQ84, 박완서 엄마의 말뚝, 박완서 나목, 박완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박완서 저녁의 해후,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친절한 복희씨, 모옌 홍까오량 가족, 모옌 개구리, 김애란 달려라 아비, 김애란 외 2013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침묵의 미래」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염소의 축제 1.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나쁜 소녀의 짖궂음, 박민규 카스텔라, 헤르타 뮐러 숨그네, 헤르타 뮐러 저지대, 보르헤스 픽션들, 엘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엘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한강 채식주의자, 한강 노랑무늬 영원, 르클레지오 사막, 르클레지오 황금 물고기, 전상국 우상의 눈물, 편혜영 외 2014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편혜영 「몬순」외, 도리스 레싱 런던 스케치,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도리스레싱 황금노트북 1.2.3, 이기호 김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검은 책, 오르한 파묵 순수박물관 1.2, 성석제 투명인간,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엘프레드 옐리니크 피아노 치는 여자, 엘프레드 옐리니크 탐욕, 요나스 요나손 창문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 이승우 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상의 노래, 이승우 생의 이면,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가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김숨 외 2015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김숨 「뿌리이야기」외, 광주전남소설가협회 코뿔소와 벌레의 지문을 밀고하다, 김숨 국수, J.M.쿳시 추락, J.M. 쿳시 슬로우맨, J.M.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J.M. 쿳시 마이클 K, 정유정 7년의 밤,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임레 케스테르 운명, 임레 케스테르 좌절, 임레 케스테르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박지원 열하일기1.2.3, V.S 네이폴 미겔 스트리트, V.S 네이폴 흉내, V.S 네이폴 자유국가에서, 밀란 쿤데라 정체성,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농담, 밀란 쿤데라 느림, 김경욱 외 2016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김경욱 「천국의 문」외,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세컨드핸드 타임,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김경욱 소년은 늙지 않는다, 귄트 그라스 양철북 1.2, 귄트 그라스 넙치 1.2, 한강 소년이 온다, 주제 사라마구 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도플갱어, 토니 모리슨 재즈,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술라, ML. 스테드먼 바다 사이 등대, 나딘 고디머 거짓의 날들, 나딘 고디머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나딘 고디머 보호주의자, 윌리암 트레버 여름의 끝, 카밀로 호세 셀라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카밀로 호세 셀라 벌집,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강태웅 이만큼 가까운 일본, 구효서 외 2017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구효서 「풍경소리」외, 구효서 별명의 달인, 나지브 마흐푸조 우리 동네 아이들 1,2, 나지브 마흐푸조 미라마르, 월레 소잉카 해설자들, 월레 소잉카 오브 아프리카,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이건혁 피코, 위화 형제, 줄리안 반스 시대의 소음,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존 밴빌 바다, 데이빗 헨리 황 M. 버터플라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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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예정)

강의준

현 평화교회 목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인문학 운동과 책읽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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