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포럼

일상에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평화실천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활동하는 평화실천가입니다. 저는 오늘 ‘지역의 평화실천가’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평화’ 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나 낱말이 떠오르시나요? 2년 전 통일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첫 번째가 비둘기이고, 이어서 통일이 나왔답니다. 비둘기는 아마 올림픽이나 국제경기에서 예전에 보여준 상징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우리가 평화라는 낱말을 가장 많이 듣고 사용하는 분야는 아마 남북 간의 평화일 것입니다. 평화체제 평화선언 등을 자주 사용하지요. 이때 평화란 ‘국가 간 전쟁’에 대한 반대를 의미합니다. 현재 남북은 아직 종전이 안 된 채 전쟁을 잠시 멈춘 상태만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러한 유지를 peacekeeping 이라고 합니다. 유엔평화유지군이라고 들어보셨지요? 유엔평화유지군은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분쟁지역에 들어가서 무력으로라고 제압해서 양측의 충돌을 멈추게 하고, 그 후 분쟁 중단상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무력으로 제압하여 멈추게 하는 행위를 peacemaking, 그 후 충돌중단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peacekeeping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잠정적으로만 무력충돌이 멈추어진 위태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지역에서 평화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국가 간 전쟁반대 또는 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은 얼핏 보면 우리 지역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비둘기를 돌보자는 것도 아닐 것이고요.

지역이란 우리의 일상과 관련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학교, 마을, 직장, 그리고 가정의 공간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일상에서 평화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흔히 이웃사이에 평화라고 하면, 뭔가 잘못되어서 고칠 일이 있어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면서 참고 넘어가는 것, 그저 사이좋게만 지내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또는 마음의 평화만이 최고라면서 일상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피해서 고요한 산으로, 들로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협소하고 부분적인 이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일상에서의 평화활동이란 무엇이고 지역의 평화활동가란 무슨 활동을 하는 사람인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평화활동가란 것이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기에 오늘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도 일상에서 평화실천가가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편안히 나누겠습니다.

2.

평화는 무엇보다 ‘서로의 관계 사이에 작동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평화활동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조직이나 구조, 언어, 제도와 문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힘을 작동시키고 영향을 미치는지 그 현상과 방식, 원인을 탐구합니다.

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은 물리적 폭력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어른이 어린이를, 상사가 부하를, 남성이 여성을, 또 청소년 중에 일진이 다른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힘을 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사회에서는 경찰이 더 큰 힘으로 개입하여 폭력을 중단시키고 이후의 사법과정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도나 규칙이 사람에게 작동하는 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호등 체계나 교통법규가 있습니다. 이것도 사람들에게 강제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언어나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서울지방’의 말을 남한사회의 표준어로 삼을 경우, 다른 지방어 사용자들은 자신의 지방어와 함께 서울지방어를 배워야합니다. 말과 글이 크게 분리되는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떤 면에서 서울지방의 힘이 다른지방에게 가하는 힘의 작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내가 나 자신에게 가하는 힘도 있습니다. 스스로 채찍질하여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며 자신을 추동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전에 자기검열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갖는 죄책감도 어떤 면에서는 내가 나 자신에게 힘을 가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나를 둘러싸고 일상에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 힘의 작동을 탐구하여서 그 방식이 왜곡되어 사람을 제압하거나 장악하고 지배 통제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힘은 폭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위협이나 혐오, 차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위계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이때 그 힘의 작동방식을 탐구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전환시키는 활동을 평화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단과 집단, 나와 타인, 그리고 나와 나 자신의 이러한 차원들은 각각 고유한 차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상호의존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면에서 평화운동은 매우 통전적인 운동입니다.

이러한 상호적 힘의 작동 방식이 서로를 보호하면서 건강하게 상호주체적으로 균형이 잡혀있을 때, 이러한 상태를 기독교성서에서는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평화운동은 힘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어떤 형태도 존재하고 작동하는지에 주목하고 왜곡된 힘의 작동을 멈추게 하고 전환시키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촉진하는 것이 모두 평화운동, 평화실천과 관계되는 일입니다.

한자로 평화의 화(和)는 쌀 미(米), 입 구(口)을 합한 글자로서, 쌀이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것이 평화(平和)라도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바로 누군가의 권력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제가 소속되어 활동하는 단체는 그물코평화연구소입니다. ‘그물코’란 우리말로서,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서로 그물처럼 이어져있는 관계를 나타내며, 그 가운데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은 모두 그 그물을 엮어가는 한 코 한 코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서로의 코들이 이어져서 서로를 붙들어주는 그물망, 안전망, 상호 관계망이 된다는 의미도 갖구요. 우리는 모두 서로가 연결된 그물망의 관계로서 서로를 적정히 잡아당기는 힘이 잘 조정될 때 서로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물코평화란 샬롬의 우리말 번역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물코평화연구소에서 주목하고 실천하는 주요 주제는 의사소통, 의사결정, 갈등전환,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한 공동체구축의 네 가지입니다.

1) 의사소통

여러분은 참으로 자유롭고 명료하게 나의 느낌이나 내가 진짜 바라는 바를 잘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내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꺼려진 경험은 없습니까?

사전에 내가 스스로 검열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을 먼저 눌러본 경험은 우리 모두가 겪어본 일들일 것입니다. 여럿이 식당에 가서 메뉴를 시키면서도 동료들이나 상사의 눈치를 보곤 합니다. 학교 교실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수업 받은 내용을 잘 모른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선생님은 나를 뭐라고 말할까 하는 생각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이러한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스스로 외부의 시선, 사회적 압력에 길들여집니다.

교육학에서 ‘숨겨진 커리큘럼’(hidden curriculum)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드러난 커리큘럼은 1학기에 방정식을 배우고 2학기에 그래프를 배운다는 것과 같은 교육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학 수업을 경험하면서, 나도 모르게 몸 깊숙이 배우는 것은 ‘수학은 어렵다’ ‘나는 무능력자다’ ‘이걸 모른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무시할까’ 같은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중고등학교 6년의 수학과목을 배우면서 정작 남는 것은 함수, 미적분이 아니라, 이러한 자기평가가 몸에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강압적인 교실의 시간들을 지나 결국 익히고 배워진 것은, 나의 느낌과 바람, 나의 상태를 정직하게 표현하면 손가락질당하고 무시당하니 잘 감추고 적당히 아는 척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게 인생이라는 것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나의 속마음은 너무도 깊이 숨어버려서,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게 되고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도 잊고 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기검열이 작동되고 많은 사회적 시선과 압력에 눌려있으면 다른 사람의 진심도 잘 듣기 어렵습니다. 우선은 내 생각이 가득하니 다른 사람의 진심이 들리지 않습니다. 내 안에 빈자리가 있어야 그 자리로 다른 사람의 말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것은, ‘저 사람은 말을 저렇게 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야’, ‘저 사람은 나처럼 눈치 보느라 이렇게 말 하는 거지 실제 마음은 다를 거야’ 라면서 오해와 추측만 자꾸 생겨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서로 간에 진심어린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느낌과 바람을 명료하고 담백하게, 자유롭고 편안하게 표현하고 계시나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잘 듣고 이해하며 사시나요? 내 느낌과 바람을 명료하고 품위 있게 표현하고 상대의 느낌과 바람을 경청하는 것, 이러한 의사소통을 ‘평화적인 대화’ ‘공감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로운 대화가 가능하도록 지지받고 격려하고 연습하는 공간을 ‘안전한 공간’이라고 부릅니다. 정직하고 용기 있는 자기표현과 진심어린 경청은 ‘안전한 공간’에서 가능합니다. 선입견 가운데 부당한 평가와 비난, 공격과 무시가 예견되는 공간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이러한 불안은 정직하고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방해합니다.

지역에서 대안교육은 이러한 반성과 성찰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대안학교 그물코학교는 이와 같은 안전한 학습공간을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공론장, 회의장소의 기초는 안전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과 직결됩니다.

2) 의사결정

우리는 대부분 평화로운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에 기초한 합의와 결정이 잘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의사결정이란, 간단히 말하면 회의를 통한 결정입니다. 집에서 이번 휴가를 어디로 갈지 가족회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4명의 가족이 있다고 치면, 가족 모두가 동등하게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왜 그곳을 가고 싶은지 등을 이야기하고 들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 우선입니다. 사실 어디를 간들 어떻습니까? 가족여행의 목적은 온 가족이 함께 즐겁게 지내자는 것이지 반드시 그 목적지에 가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가족여행으로 어디를 갈지를 서로 이야기 나누는 과정부터 이미 즐거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를 말하면 아빠가 싫어할 거야, 저기를 가자고 하면 엄마가 서운해할거야, 하지만 나는 진짜 거기 가기 싫은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대화한다면 상호신뢰 속에서 이루어지는 즐거운 대화는 어렵습니다. 또는 반대로 무조건 여기를 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한다면 가족여행의 의미는 이미 사라지고 주어진 명령에 복종하러 가는 고역의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아주 단순한 가족여행회의에도 이렇게 깊은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을이나 사회의 여러 모임들, 그리고 직장에서의 회의는 어떻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회의의 경험이 어떻습니까? 우리 마을에는 다양한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동돌봄지원금 대상을 동네에 사는 외국인 자녀들에게도 지급해야 하는지? 비등록외국인도 코로나방역마스크를 공급해야 되는 것인지? 마을 앞산을 뚫는 터널이 꼭 필요한지, 우회도로를 만드는 게 더 좋은 것인지? 모두에게 꼭 필요한 폐기물매립장은 어디에 세워야하는지? 우리 마을에서 이야기 나누고 결정해야할 의제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의제들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때 힘을 가진 특정 소수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평화로운 의사소통에 기초하여 토의하고 또 생각하고 학습하는 숙의과정을 거쳐서 공동의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이 의사결정의 과정입니다.

의사표현과 의사결정의 과정을 이해하고 연습하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시작이자 핵심훈련과정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제도나 규칙보다 훨씬 더 심오한 민주주의의 실현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미국에 초기 민주주의를 소개한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를 넘어서서 ‘습속’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공동의 의사표현을 한 소중한 민주주의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결과 불의한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경험합니다. 대통령 한사람 바뀐다고 우리 일상이 진짜 자유롭고 평화롭고 민주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광장정치 광장의 촛불을 일상의 민주주의로 이어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배우고 연습하고 서로 격려하는 훈련장이 마을 곳곳에 세워져야 합니다. 힘 있는 경찰이나 높은 사람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들으면서 생각하고 합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론장이라고 부릅니다. 역시 제도를 넘어서서 마을, 학교, 가정에서 실현되도록, 습속으로 이어지도록 연습하고 도와야 합니다.

화성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는 마을에 작은 공론장들을 만들어가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의제들을 직접 선정하고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7-8명 정도면 충분합니다. 작은 도서관들이 이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화성에는 약200여개의 작은 도서관이 있고 그 외에도 마을 만들기 소모임, 도시재생모임, 시민단체 등 많은 모임이 있습니다. 이 모임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발굴하고 토의하고 논의합니다. 공동의 의제가 있으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고 공동의 의사표현을 합니다. 여기에 지역 언론들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회의를 한다는 것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듣는다는 것이고, 공동으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 함께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소수가 결정하고 소수가 진행하는 것은 다수가 소외되고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다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그러한 결정이 공동의 결정이 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3) 갈등전환

그런데 이런 회의를 배우고 시도해보면, 처음에는 ‘우리가 결정하니 참 좋다, 재미있다’ 하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날처럼 힘 있는 사람이나 전문가가 결정 하는 게 낫겠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야기과정에서 갈등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힘 있는 사람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때는 몰랐는데, 이제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의견의 차이가 드러나고, 그 차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을회의는 빠른 ‘결정’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정은 되었는데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다면 누구하고 일을 합니까? 마을을 위하자고 일을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갈등만 생긴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정상적이고 당연한 과정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끄는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분 갈등이 일어나면 3F로 반응한답니다. 첫째는 Fighting 정면대결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것입니다. 이때 힘이란 물리적 힘도 있지만 지식으로, 소위 말발로, 나이로, 성별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태도가 있습니다. 둘째는 Flight 회피와 도망입니다. 갈등이 일어나면 외면하고 다른 사안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엄연히 갈등이 나타난 상황인데도 갈등이 없는 척하고 다른 이야기만 합니다. 그래서 갈등에 직면하고 주목하고 갈등을 전환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는 Frozen 무반응 겨울잠입니다. 갈등 자체가 무섭고 상대가 나를 제압할 것이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그냥 얼어붙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마음은 어떨까요? 내가 힘만 있다면 그놈을 짓밟을 텐데 하면서 복수심에 불탑니다. 또는 스스로 무능함을 자책하고 한탄합니다. 겉으로는 무반응이라 평화로운 상태로 보일지 모르지만, 무력충돌 직전의 폭력적 위기상황일수도 있습니다.

평화운동에서 갈등전환은, 상대를 제압당하거나 외면하는 방식이 아닌, 억울한 마음에 복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외의 다른 길을 탐구하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 갈등을 통해 우리가 서로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때 갈등은 나와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이며, 서로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함께 서있는 공동의 토대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의사표현을 통해 우선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같다면 우리는 대화의 필요가 없습니다. 한사람이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이것이 대 전제입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 다른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한 우리는 동일한 면, 일치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다르면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우리는 한국어를 사용해서 소통이 가능합니다. 최소한 우리는 여행을 가면 즐겁고 좋다는 동일함이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선한 마음도 있습니다.

갈등은 당연하다. 갈등은 언제나 일어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 갈등을 통해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배우고,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공통의 토대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갈등은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을 일으킵니다.

최근 경찰청에서는 각 지역마다 민간위원들을 위촉하여 경찰과 민간위원이 함께 ‘회복적 경찰활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강제력만으로 일상의 갈등이나 폭력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갈등전환전문가인 민간위원들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차문제는 이웃 사이의 문제입니다. 상대가 잘못하여 구속하거나 벌금형을 받는다고 해서 그 이웃과의 갈등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후에는 앙갚음을 하려 할 수 있고 더 갈등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조치 없는 처벌만으로는 갈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 간의 소음분쟁이나 청소년 학생들 사이의 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폭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평화교육에 기초하는 갈등전환을 도입하여 확장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나 직장에서도 안전한 공간과 회의, 그리고 갈등전환의 인식이 생기고 평화실천이 확산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일상의 평화활동, 평화실천가가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흔히 이러한 기술을 ‘적정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제 생각에 자동차 운전 정도의 지식과 기술을 익히면 평화실천가로서의 출발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모두 전문가가 되어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작은 힘들이 우리의 평화를 만들고 민주주의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안전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 진심어린 의사소통을 연습하는 것, 회의의 기술과 갈등전환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을 평화의 공간으로 바꾸어 갈 것입니다.

오세욱

그물코평화연구소 대표

청소년대안학교 그물코학교 교장

화성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상임대표

노둣돌

전남대학교 지역인문학센터 입니다. jnuinmun@inmuncenter.org / 062-530-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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